제1장 가족By admin / August 28, 2025 Search 1-21-3 : 이상원 박사의 세 자녀들. 왼쪽부터 첫째 아들 동형, 딸 진이, 둘째 아들 건형. 이상원 박사가 부산 해운대에서 군의관 근무를 할때 임신한 부인이 분만끼가 있어 모 산부인과 의사의 도움을 처음으로 받았다. 그때 난산으로 태아를 칼로 잘라내자고 하는데 시아버지가 분만하는 자부를 부산 일산 산부인과 병원으로 데리고 가서 제왕 절개 분만을 했다. 바로 그 아이가 커서 의사가 된 둘째 아들 건형 박사이다 1-22 : 맨 윗줄, 좌로부터 세번째 이상원 박사의 당숙모, 네번째 당숙, 가운데 줄, 좌로부터 두번째 딸 진이, 맨 아래줄, 좌로부터 상규 육촌형, 건형, 이상원 박사 1-23 : 이상원 저서 부모도 반의사가 되어야 한다 - 소아 가정간호 백과, 김태수 박사 인술 보시, 이상원과 부인 이춘자, 이상원 박사의 서재 일부,부모도 반의사가 되어야 한다-뉴욕 한국 일보 광고. 이상원 박사 소아 가정간호 백과 출판 기념회에서. 의사 조카인 이건형 박사가 고모 생일날 케이크를 드린다. 이상원 의사는 환자를 우선으로 본다는 신문기사 1-24 : 뇌졸중으로 말을 못하시는 시어머님을 공원으로 모시고 가서 눈으로 몸으로 자부가 대화를 하고 있다. 몸으로 대화하는 자부 이춘자 약사 1-25 : 장한 어머니 표창. 뉴욕 한국 일보에 게재된 이상원 박사 글 1-26 : 소아과 전문의 이상원 박사의 두 이모님이 아버지 환갑날 홍성에서 안면도까지 오셔서 인사하신다 1-27 : 소아과 전문의 이상원 박사의 아버지 이시우 1-28 : 나를 낳고 길러준 부모님을 공경하라 1-29 : 이상원 박사의 아버지는 경주 이씨 석탄파 이시우 1-30 : 이상원 박사의 친할아버지는 친할머니가 36세였을 때 돌아가셨다. 그때 이상원 박사의 아버지는 4세였다. 할머니는 혼자서 아들 셋과 딸 셋을 키우셨다 1-31 : 이상원 박사의 아버님은 초등학교도 다니지 못하셨다. 어깨너머로 한문을 조금 배웠다 1-32 : 이상원 박사는 서산 보건소 무의촌에서 진료봉사를 할때 주말이면 안면도 집에 가서 부모님을 뵙고 동네사람들을 무료로 진료했다 1-33 : 역사상 처음으로 안면도 태생 이상원 박는 연세 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했다 1-34 : 이상원 박사의 아버지는 인정이 많으신 분이었다. 조카 대학 학비도 내주시고, 추석이나 명절이 오면 동네 사람들을 집으로 불러 대접했다 1-35 : 이상원 박사의 둘째 큰 아버님은 가난했다. 이상원 박사의 아버지는 형님께 집도 사주고 논도 사주었다. 동네에서 추석때 소를 잡으면 사다가 동네 사람들을 초청해 소고기와 농주를 대접하느라 식구들은 조금밖에 먹지 못했다. 이런 것을 배워서 이상원 박사는 미국에 이민한 동생 이상분에게 집을 사주기도 했다 1-36 : 이상원 박사는 연세의대를 졸업한 후 한달도 빼 놓지 않고, 그리고 미국에 1968년 이후도 계속 어버님 어머님 동생들 생활비를 대고 집도 사드렸다 1-37 : 여동생 이상숙이 이상원 박사가 뇌졸중에 걸린 오빠의 부인 이춘자를 집에서 돌보는 것을 보고 감동해서 쓴 글 1-38 : 세째 여동생 상숙은 간호사, 목사이다 1-39 : 이상원 오빠는 언니와 많이 대화를 하고, 많은 사랑을 나누고, 많이 안아주고, 좋은 음악을 틀어주고, 희망을 주었고, 수없이 기저귀를 갈아주고, 빨래를 하고, 온통 시간을 때로는 의사로서, 남편으로서, 친구로서 식모로서 집안 일을 마다하지 않고 헌신했다고 칭찬하는 글 1-40 : 이상원 박사의 둘째 여동생 이상분, 남편 주득노와 아들 정민. 이상원 박사의 둘째 여동생 이상분은 중학교만 졸업하고 이상원 박사 오빠 대신 부모님 동생들을 돌보았다 1-41 : 브라질로 이민 가기전. 이상원 박사의 남동생 이상률과 그의 가족, 그리고 강아지 1-42 : 이상원 박사님의 어머님은 심장병으로 일생동안 고생했다. 아들 이상원은 세상에 병을 치료하는 의사가 있는 줄도 모르고 살았다. 어머님 병을 고친다고 때로는 잔대를, 복량을, 창출을, 뱀술을, 호랑이 고기등으로 치료해 드렸다. 1-43 양춘가절 호시절. 아버님의 시꽃이 떨어지니 봄산이 빈 것 같고새가 울어도 눈물을 보지 못 하고녹음 방초로 만산에 홍록이고봄철이 가고 여름 철이 오는 구나. 이상원 박사의 아버지는 위암 수술치료를 받은 후 재발해 돌아가시기전 쓴 시를 돌아가신후 침대 밑에서 발견 1-44 : 양춘가절 호시절. 아버님의 시.춘몽이 깨우고삼동을 엇찌 보내나작야에 남풍이 슬슬 불어 오드니금일에 감우가 순순이 오는 구나삼춘 가절응 가치 없이 가쓰나삼촌 초목은 춘색이 늦는구나어려서 부터 미국이라 하더니와서 보니 산천이 펴평하고모든 것이 풍부 하고이 모몸이 병이 들어 진퇴 양난일세식다 하나 육신 상고라. 이상원 박사의 아버지는 위암 수술치료를 받은 후 재발해 돌아가시기전 쓴 시를 돌아가신후 침대 밑에서 발견 1-45 : 이상원 박사의 아버지의 시- 조재견불눈이고.화낙 춘산공새가 울어도 조재하니 봄산이 빈 것 같고꽃이 떨어지니 봄산이 빈 것 같고새가 울어도 눈물을 보지 못 하고음 방초는 만산에 홍록이고세울은 이미 여름럴이 가는 구나. 이상원 박사의 아버지는 위암 수술치료를 받은 후 재발해 돌아가시기전 쓴 시를 돌아가신후 침대 밑에서 발견 1-46 : 이상원 박사의 아버지의 시-인생 일장 춘몽 1978년 5월.우연히 창문을 열고 바라보니 전후 산천이 녹색이로구나가지가지에 꽃이 피어 점 붉어지고 벌 나비는 래상 접하는구나춘초는 년년 록하건만 인생은 귀 불기하난구나. 이상원 박사의 아버지는 위암 수술치료를 받은 후 재발해 돌아가시기전 쓴 시를 돌아가신후 침대 밑에서 발견 . 1-47 : 이상원 박사의 아버님은 한국에서 위암수술을 받고 미국에 오셔서 많이 회복 되셨다. 사진 좌로부터, 이상원 박사, 둘째 아들 건형. 첫째 아들 동형, 아버지, 자부, 딸 진이 1-48 : 이상원 박사가 고급 승용차 캐딜락으로 아버님을 모시고 나이야가라 폭포를 구경하러 가기전 « ‹ of 6 › »